혼자서 본 영화 - 정희진

'사랑한다'와 '사랑했다' - 하얀 궁전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반대 상황은 확실하다.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다'이다. 사랑은 시점이 개념을 좌우한다. 사랑할 때와 헤어질 때 혹은 '식었을 때' 태도의 차이가 인간의 인격의 기준이라고 믿는다. 남겨진 사람은 시간에 따른 상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 모든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결핍이나 욕망에 대한 자기 판단, 회계(會計, 대차대조표), 자기 확신의 활동이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받음은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기 혼란이다. 사랑은 내가 타인의 상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본인이 매력적이고 잘나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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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히즘을 욕망하는 여자? - 피아니스트

 일탈 욕망은 젊은/부잣집/도련님에게나 가능하다. 그것은 성 해방이며 인간의 성장과 창조를 촉진한다. 자기 세계를 넓히기 위한 남자의 모험이다. 그러나 힘없는 자의 욕망은 역겹거나 최소한 심한 불편함을 준다. (노인의 성과 사랑의 '욕망'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폭력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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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를 찾아가 만난다면 - 끔찍하게 정상적인

 약자에게 대화는 어려운 일이고, 강자에게는 귀찮은 일이다. 가해자가 대화를 먼저 요구할 때는 자기 필요에 의해서이고, 피해자가 대화를 청할 때는 "나한테 왜 그랬나요?"라고 묻기 위해서이다. <끔찍하게 정상적인>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면, 대화를 다루지만, 피해자는 무너지지 않고 가해자의 멱살을 잡는다.
 피해자에게 도움까지 주겠다는 가해자의 팽창된 자아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찌질하고 비겁하면서도 동시에 배려와 시혜의 주체가 되려는 이들. 이들은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자기의 잘못을 알고 있는 타인이 지치기를 바란다. 증인 살해, 군 위안부 문제가 그렇고, 세월호가 그렇다. 약자의 투쟁에 시간 끌기로 대처하는 것이다. 끔찍한 정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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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라는 자발적 고통 -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자기 증오이며 자기 몰두이자 결국 자기 도취다. 질투와 성찰은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성찰은 한자[省察]로도 영어[reflexible]로도 모두 재귀적(再歸的) 의미를 갖는다.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는 것, 자신에게로 돌아가 스스로 수정하는 사유 과정이다.
 성찰은 자기로부터 출발하고 자기로 돌아오는 사유지만, 질투는 질투 대상에 대한 자기 중심적 해석이기 때문에 사고의 중심이 타인에게 있다. 바로 그 의미에서 질투는 자기 중심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질투하는 자는 자기 불행에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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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강을 건너는 방법 - 슬픔의 노래

 주인공은 세상을 아는 듯 '비관적이다'. "강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요. 배를 타는 것과 스스로 강이 되는 것. 대부분 작가들은 배를 타더군요. 작고 가볍고 날렵한 상상의 배를." 나는 이 대사처럼 상상력을 정확하게 정의한 경우를 알지 못한다. 상상력은 상상하는 행위가 아니다. 상상력은 다른 생각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 위치를 바꿀 때 새롭게 생성되는 다른 정치적 입장, 공간을 의미한다. 위 대사가 비판하는 상상력이란 현실에 발을 담그지 않은, 현실에 무지한 혹은 현실을 이용하는 이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사하는 '생각 없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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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남성, '비정치적인' 여성? - 송환

... 남성과 여성의 역사는 출발선이 각각 다르다.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 없이 '아버지'의 어깨 위에 앉아 여성이 배제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장녀스레 전수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지배 언어가 일치한다. 그들은 언어가 없어서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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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으로 1루까지 걷다 - YMCA 야구단

 우리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언어의 역사다. 언어는 인류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의 총체적 체계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사회는 외부의 이익에 휘둘리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민중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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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재규의 차이? - 그때 그 사람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 중심성의 또 다른 측면은, 남성이 여성의 친밀성 능력과 감정 노동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많은 여성들이 남자와 연애할 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남자로부터 유래하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자신이 지닌 풍부한 감성과 사랑의 능력을, 상대 남자의 매력으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배려, 보살핌, 사랑을 생산하기 위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남자들이 그 많은 시간을 남자들과 보내면서도 그들 내부에서 친밀성을 해결하지 못하고 여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그것을 채워주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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