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괴물들 - 니콜러스 모즐리

 1. 엘레노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역경을 오히려 반갑게 여길 만큼 괴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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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맥스

 ... 나는 세계가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아버지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사람이 맛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이것들은 도대체 뭐죠? 원자는 뭐예요? 아버지가 연구하는 건 뭐예요? 아버지는 유전자를 보거나 만질 수 있나요?"
 그러면 아버지는 대답하곤 했다. "아니."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과학자들은 자기가 시험하고 측정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죠?"
 아버지가 내 침대 끝에 앉으면, 침대는 콩줄기처럼 금방이라도 폭삭 무너질 것 같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과학자들은 실험 계획을 짜고, 실험 결과를 관측하고 측정하지. 물론 그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단다."
 "왜요?"
 "왜 꼭 말해야 하지?"
 "이것을 나타내는 말들을 지어낸다는 말씀이군요."
 "사람은 말할 때마다 어찌됐든 말을 지어내는 법이야."
 "이런 것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무언가는 반드시 존재해.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결과가 나오겠니?"
 나는 생각했다 - '그렇다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게 어떤가? 그러면 상황이 동화 속에서 여행을 하는 것과 더 비슷해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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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엘레노어

 1932년 여름에 실시된 총선거에서 나치스는 제1당이 되었다. 그들의 집권은 불가피해 보였다. 다른 정파들은 집권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벼랑끝에 선 사람들은 여전히 공포에 떨며 허둥댈 뿐이었다. 폰 파펜이 총리가 되었고, 다음에는 폰 슐라이허가 총리가 되었다. 히틀러가 총리가 된다는 것은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벼랑끝에 서서 눈을 감고 코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
 공산당도 집권에는 욕심이 없는 것 같았다.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가 이룩되려면 자본주의가 먼저 죽어야 하고, 그 죽음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파시즘이나 나치즘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역사의 순리에 따라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도록 나치스의 집권을 받아들여야 -'객관적인 의미에서는 그것을 조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의미에서는 나치스는 여전히 그들의 적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길거리에서 나치스와 싸워야 했다. 이 무렵 공산주의자들은 약간 미쳐 있었다.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고대의 조각들 같았다. 뇌의 한쪽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다른 쪽 뇌에 알려주지 않았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것을 광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자의 돌'의 한복판에 있는 것과 비슷한 신비로운 지식의 한 형태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내가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나치스의 집권을 이미 기정 사실로 인정하고 지하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무덤 옆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무덤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객관적으로 볼 때 어떻게 그것이 진정한 혁명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이런 일에 익숙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 '어머니들. 어머니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우리는 지구 중심에 고통스러운 밧줄로 묶여 있는 것처럼 어머니들과 묶여 있어. 그 밧줄을 끊으면 우리는 우주로 날아가버리지. 밧줄을 끊지 않으면, 침대 끝에 눕혀진 갓난애처럼 피가 거꾸로 흘러.'
 나는 몸이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한쪽 팔은 이쪽에, 한쪽 다리는 저쪽에 있다. 내 몸은 아마 산산조각으로 분해될 것이다. 내가 우주로 떨어질 때 지르는 비명을 지문으로 되풀이하는 목소리, 실성한 사람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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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맥스

 사랑에 대해 쓰기는 어렵다. 사랑의 면전에서 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사람은 사랑을 향해 달려갈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랑에 부딪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랑이 도망치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옆에 있을 때는 줄타기용 밧줄 위에서 두 사람이 마주보고 다가가는 것과 같다.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줄에서 떨어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 속으로 들어가 한몸이 되고 싶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이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불가능하다. 나뭇잎처럼 살다가 가랑잎이 되어 떨어지는 편이 얼마나 쉽고 더 자연스러운가.

 바로 그때 리센코라는 과학자가 나타나, 개량된 신품종 밀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 이 신품종은 형질이 유전을 통해 전달될 수 있는 품종이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맞아요. 소련의 그 신종 과학자는 정말로 불쑥 나타났어요. 그런데 그 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걸 발견하겠니? 나는 바빌로프한테 말했어. 소련 체제에서 필요한 것은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거라고. 이게 바로 그런 예가 아닐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하지만 그건 정말 놀랄 만한 실험이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조사하는 실험은…'
 -'이것은 실험 조건의 함수로 작용하는 현실에 대한 진정한 시금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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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맥스

 영국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탈린의 러시아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잔인하게 강요된 집단화와 기근 소식도 그들의 견해를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말하곤 했다. "그렇게 원대한 실험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야." 나는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실험에서 사람들이 뭘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히틀러의 독일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원대한 실험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야!" 나는 속으로 말했다 - '러시아와 독일의 차이점은 맛과 감촉과 냄새에 있어. 그런데 진화의 방향을 인간이 정말로 알 수 있을까?'
 히틀러가 생각하는 역사의 방향이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였다. 10년 전에 그는 『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 독일은 독일인에게 더 많은 활동 무대를 마련해 주기 위해 러시아를 공격해야 한다고, 또한 국내의 유대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들도 '참으로 원대한 실험'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나의 투쟁』을 읽지 않거나, 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나는 생각했다 - '어떤 차원에서 보아도 사악한 것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을 보기를 거부하는 이런 태도가 아닐까.'
 러시아에 원대한 희망-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고, 사회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 '악은 설령 그것이 역사의 진행 방향과 관련되어 있다 해도 받아들여서는 안돼.'

 나는 생각했다 - '나는 왜 지금까지 줄곧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아버지는 태엽장치처럼 천천히 방에서 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계 밑바닥에 놓여 있는 인형들 같아. 시간이 되면 불쑥 튀어나와서 시간과 날씨를 말해주는 인형.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간은 이제 끝나가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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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맥스

 ... '사람들이 말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단지 말이 내는 소음 때문이야. 소음은 사람들의 머리를 보호해 주지. 침묵 속에서는 두려운 진실이 머릿속으로 뚫고 들어올 수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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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엘레노어/맥스/엘레노어

 나의 천사,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 그러면 인간은 자기 모순의 짐을 짊어질 수 있을까?
 선과 악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고, 배움과 진화와 선이 시행착오와 막대한 낭비의 결과로 일어난다는 것도 배웠는데, 왜 인간은 낭비될 운명에 놓이면 안 되는가?
 이 이상한 행성에서 이것은 얼마나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논리이고,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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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에필로그

 두 개의 원자폭탄이 1945년 8월에 일본에 떨어졌을 때쯤, 맥스는 뉴욕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동안 그는 미국 안보기관의 의심을 받게 되었고, 기관에 출두하여 심문까지 받았다. 심문에서 (맥스는 이 이야기를 즐겨 하곤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나 군사적 관점에서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원자폭탄 투하가 전쟁을 몇 년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몇 달은 단축시켰을 가능성이 있고, 후세에 섬뜩한 경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과학자로서는 원자폭탄 투하에 항의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꼈다. 심문자들은 다른 개인이나 집단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의 경우에도 관점에 따라 다른 도덕률이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맥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 '이치에 안 맞기는 커녕, 사회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서로 모순되는 도덕적 성향들이 진정으로 상호작용을 일으켰을 때에만 비로소 올바른 행동방침이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한 개인의 정신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원자폭탄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아도 원자폭탄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인류가 살아남거나 진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은 분명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진보했을 때 악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원자폭탄 같은 충격적인 것의 존재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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